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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건강 누구 책임인가? (박호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6-14 조회 1939
내용 박호진 (2011/3/24)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나의 건강, 누구의 책임인가

건강과 건강관리(health care)는 중요하다. 병들면 우선 고통스럽고 당장 일할 수 없다. 뒷감당은 일차적으로 당사자의 몫이다. 또 내 집 앞에 누가 쓰러져 있으면 "난 몰라"가 어렵다. 선행(beneficence) 여부를 떠나 119에 전화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흄에 의하면 인간은 완전히 이타적이지 않고 전적으로 이기적이지도 않다.

산업화 이전 사람들은 농사일을 많이 했다. 일부는 어업이나 사냥을 했다. 도시는 지금처럼 인구가 과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60년대 이전을 생각하면 된다. 상업중심지나 항구도시는 좀 붐볐을 것이다. 그 시절 풍랑을 만나거나 벼락 맞아 사람이 죽으면 불운(unfortune)으로 여겼다. 병이나 상해를 당하는 것은 개인 문제고 치유도 마찬가지다. 주변 사람들은 약간의 성의를 보이면 된다.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 박카스라도 한 박스, 아니면 촌지를 건네고 눈도장을 찍는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었다. 산업체에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과 공산품 소비처가 중요해졌다. 식민지 쟁탈전이다. 건강한 노동력과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다. 영국이 산업재해보험의 효시고, 1883년 독일이 의료보험을 처음 시작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국민건강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경쟁하면서,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했고 어린이대공원도 만들었다.

도시화 현상은 각종 전염병을 부채질한다. 주원인은 불결한 상하수 처리와 쓰레기 등이다. 예방의학이 생기고 공중보건(public health)의 개념이 대두된다. 개인위생이 중요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질병의 원인에 ‘사회적’ 요인이 중요해졌다. 국가가 강권을 발동해 환자를 격리시키고 공중위생을 챙기고 집단 예방접종을 했다. 서유럽의 경우 이런 현상은 1960년 전후까지다. 국가가 주도하는 건강보험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그 이후 인간의 수명이 늘고 노인인구가 급증했다. 전염병은 급감하고 성인병이 새로운 골칫거리다. 비만, 흡연, 운동부족, 라이프스타일 등 개인적 원인이 중요해진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스트레스, 직업병, 환경오염 등 사회적 원인도 여전하다. 만성병 환자는 전염병처럼 병을 옮기지 않아 국가개입의 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달은 치료비를 올린다. 완치도 못하지만 쉽게 죽지도 못한다. 개인이 대처하기엔 가산을 탕진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무엇인가?

헌법에는 많은 기본권이 열거되어 있다. 다른 기본권을 희생시키고 건강권을 부르짖으면 선진국이 되는가. 여러 기본권들 사이의 우열 논쟁으로 날이 지고 샐 것이다. 사회통합은 물 건너간다. 내가 남의 건강관리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국가든 사회든 개인의 건강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가. 아니면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 분명 둘 다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보험급여 확대가 판친다. 정치인은 남의 돈 갖고 생색내는 데 귀신들이다. 여기엔 좌·우·보·혁이 따로 없다. 준조세도 누진으로 내야 한다. 납세자들은 무슨 죄인인지 목소리가 없다. 현재는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갈등 구도다. 한 10년 지나면 세대 간 전쟁도 예상할 수 있다. 일하는 젊은 세대는 노인들의 뒷바라지에 몸서리칠지 모른다.

더 늦기 전 우리 사회는 건강보험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끝)